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강 몸통시신 사건 (문단 편집) == 피해자 및 유족 == 피해자의 유족들은 장례를 미루고 피해자의 시신이 다 수습되기를 기다렸으나 한 달이 지나도록 끝내 시신 전체를 찾지 못하자 결국 포기하고 장례를 치렀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0741734|기사]] 피해자 이씨는 [[중국]] [[조선족]] 출신이며 [[대한민국]]으로 [[귀화]]했고 사망 당시 만 33세였으며[* 장대호의 회고록에서 언급된 피해자의 민증 앞자리가 86년으로 되어 있다.] 아내와 당시 5살이었던 어린 아들이 있었다.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지만 피해자가 처참한 죽음을 당했음을 안 뒤 아내가 엄청난 충격을 받는 바람에 [[유산]]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에 주소를 두고 있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조선족이 많은 서울 [[구로구]]를 찾아 술을 마시고 혼자 노래방을 가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대호가 외부로 유출시킨 옥중 서신에 따르면 살인 후 피해자에게 죄책감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품으로 신원 조사를 하자 피해자가 조선족인 걸 알게 되었고 피해자가 지닌 수첩에는 몸을 파는 여성들의 이름 등 신상과 불법적인 일(포주)을 하는 정황이 적혀 있었다고 하며 이를 확인한 순간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씨는 사건 당일에도 술에 취해 택시를 잡은 뒤 "아무 모텔이나 가 달라"고 요구했고 공교롭게도 장씨가 일하는 모텔에 도착해 변을 당한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네티즌들이 조선족에 대한 [[증오발언]]을 퍼부으며 [[악플]]을 달기도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1&aid=0003028030|기사 댓글란 참조]] 유가족들은 항소심 공판에 통역인과 함께 참석해 진술하기도 했다. 통역과 같이 오긴 했지만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직접 말했는데[* 법원의 통역은 일반적인 생활 어휘가 아니라 법률 용어에 익숙해야 한다.] 피해자 어머니는 "장대호는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도 반성하는 모습이 하나도 없다"면서 "손주가 이 사건을 알고 난 후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판결을 내려달라"고 엄벌을 요구했고 진술 중간에 재판부 앞에 무릎을 꿇으려 시도하며 오열했다. 아내 역시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어린 아들 생각에 살아가고 있다"고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고통을 호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